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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 - 제 1과 - 2020년 9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1장 10-20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08-31 (월) 03:28 조회 : 37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9월 6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제 1과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            

 

 

학습구절: 이사야 1장 10절부터 20절까지

 

성경진리: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다.

 

주요교리구원  
회개(悔改)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진정한 방향(方向)의 전환(轉換)이다 (사 55: 7).

 

암송구절:  이사야 1장 18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Come now, let us settle the matt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시작하는 글:  

 

우리의 일상은 청구서 지불하기, 식료품 점에 가기, 자동차 정비 받기 등의 습관적인 평범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교회 생활이나 신앙생활도 깨뜨리기 힘든 반복적인 습관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관계까지도 진부해지며 평범한 일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관계의 실패에도 방심하게 된다. 

 

당신은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습니까?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있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이사야 1장 1절부터 4장 6절까지

 

     이사야 1 장 1 절은 66장으로 되어 있는 이사야서를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기원전 8 세기 후반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보고 선포한 “계시”로 밝히고 있다.

선지자의 공적 사역은 기원전 740 년경에 유다를 오랫동안 통치한 웃시야 왕 (사 6: 1 -13 참조)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었고, 요담의 16년 통치 기간 동안과 (왕하 15: 32 -35 참조), 그 이후 29년간의 히스기야 통치기간까지 (왕하 18: 1 -2 참조) 계속 되었다.

     이사야서의 시작은 (사 1: 2 -31) 실제로 영적 거역과 사악한 행위로 인해 유다 백성을 심판하는 말이 되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던 것이다 (1: 4).

하나님은 여러 가지 징계를 통해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고 하셨지만, 그들은 듣지를 않았다 (1: 5  -9).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과 지도자들을(1: 10)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시대에 멸망시킨 두 개의 사악한 도시인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들”에다 비유하였다(창 19 장 참조).

     이사야는 또한 공허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백성들의 모든 시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것들은 소용이 없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위선적인 예배를 미워하셨고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1: 10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는 해결책이 있으셨다. 회개하고 다시 신실하게 행하는 것이다. 

백성들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고, 악행을 그치고, 선을 행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1: 16 -31).

     2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회복된 예루살렘이 높아지고 하나님의 평화를 알게 될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2: 1 -4).

그 환상에 비추어,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는 주위의 이교도들의 관습을 따르지 말고 “여호와의 빛에 행하[라]”고 도전한다 (2: 5 -11).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우상이나 인간의 교만을 신뢰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2: 12 -22).

     여호와께서는 유다의 상황에 대한 많은 책임을 비참한 지도자들에게 물으셨다 (3: 1 -15).

하나님은 지도자들이 사라지고 자격이 가장 적은 사람이 갑자기 지도자 자리에 앉을 정도로 그들에게 무서운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3: 6).

실제로,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을 “맷돌질하[듯]” 짓뭉갠다고 꾸짖으셨다 (3: 15).

      3장 16절부터 4장 1절에서,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죄 많은 귀족 계층의 여인들을 백성들의 병든 자존심의 상징으로 불렀다.

그들은 화려한 옷차림을 하였고 딸랑 딸랑 소리 나는 발목 팔찌를 차고 활보하고 다녔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바로 그들 여인들은 모든 화려한 옷들과 보석들을 잃고 성읍의 많은 남자들이 싸움에서 죽임을 당한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될 것이다.

     4장 2절부터 6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장차 시온(예루살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하실 일을 다시 설명한다.

4장 2절부터 6절까지는 일반적으로 성읍을 정화하고 거룩한 남은자를 부르기 위해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시(豫示)하는 메시야적 언급(言及)으로 이해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낮이면 구름과 연기”로 그리고 “밤이면 화염의 빛”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그의 백성을 다시 신실하게 인도하실 것이다.

 

 

학습구절 연구

 

공허한 의식(儀式)들 (이사야 1장 10 -15절)  

 

이사야 1장 6 -9 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취하신 조치들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인내와 은혜가 아니었다면, 거룩한 성읍인 예루살렘은 고대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멸망에 직면했을 것이다 (1: 9).

 

이사야 1장 10 -11절

  •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재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이사야는 그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도전한다.

들으라”라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의 근본적인 뜻은 "듣고 순종하라”이다.  

그것은 신명기 6장 4절에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을 때, “들으라”고 번역된 단어와 같은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문구는 예언적 메시지를 나타내는 독특한 표식(標式)이 되고 있다.

이사야는 개인적인 의견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따라서, 유다 백성은 예언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들”로 특징지은 것에서는 그들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메시지가 심판의 경고(警告)인 것이 암시되고 있다.

이들 두 고대 도시는 성경에서 창세기 13 장 10 -13절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곳에 보면 성경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사해 근처의 요르단 평야에 소돔 방향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중에 롯은 사악하기로 유명한 도시인 소돔 성안으로 이사하였다.

하나님은 롯과 그의 가족을 소돔에서 구출하기 위해 두 천사를 사자로 보내신 후 결국 소돔과 고모라를 모두 멸망시키셨다 (창 19: 12 -13, 24 -25).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거룩한 도시인 예루살렘과 그들 자신들에게 그같이 경멸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선지자의 요점은 분명하다.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두 사악한 도시에 필적하는 극단적인 타락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고 도전하였다.

”이란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토라’(torah)이다.

결국, 이 용어는 구약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인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표제(標題)가 되었다.

따라서, 이 용어는 율법(출 20-23)뿐만 아니라 역사(창세기), 노래(출 15; 신 32: 1 -43), 예배 절차들 (레 1 -6)과 인구 조사 (민 1: 1 -46; 26: 1 -65)까지 포함할 정도로 광범위한 것이 되고 있다.

성경의 이 모든 유형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중요한 교훈(敎訓) 혹은 법(法)이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은 당시와 지금의 그의 백성이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교훈을 준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 되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께 등을 돌렸고, 소돔과 고모라의 불 경건한 사람들에게 필적하는 백성이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라는 말씀으로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의 동기(動機)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셨다.

무수한 제물”로 번역된 말은 백성들이 여호와께 드린 여러 종류의 제물을 가리킨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성전에 가는 일과 제사를 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더 많은 희생제물을 바쳤다.

그들이 드리는 번제단은 “숫양의 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으로 바쁜 곳이 되었다.  

레위기 1장 3 -17 절에 의하면, “번제물”은 예배자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을 뜻하는 자발적인 희생제물이 되고 있다.

살진 짐승의 기름”이라는 표현은 값 비싼 제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경우에는 진실한 헌신이 아니라 순전히 보여주려는 목적이 되고 있다 (막 12: 41 -44 참조).

     여호와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백성의 희생제물로 “배불렀[다]”고 선언하셨다.

더욱이,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셨다.

그러한 선언은 유다의 통치자들과 백성들에게 충격적(衝擊的)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여호와께서는 성막 건축과 나중에 성전 건축을 승인하지 않으셨는가 (출 25: 8; 삼하 7: 12 -13)?

여호와께서는 또한 율법으로 제사와 제물에 대한 자세한 규정을 백성들에게 주지 않으셨는가 (레 1 -7장)?

     왜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더 이상 “기뻐하지” 않는다고 선언 하셨는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열왕기상 6: 12 -13에서 찾을 수 있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을 때,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임하여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배 의식을 늘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한 삶을 살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실제로, 형식적인 예배로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를 사려고 했던 것이다.

두 구절의 공간에서, 이사야는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하나님께서 아주 오래 전에 멸망시키신 두 성읍인 소돔과 고모라의 사악함에 비유한 다음,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위선적인 예배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사야 1장 12 -14절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내 앞에 보이러 오니”라는 말은 백성들이 제물을 드리기 위해 성전에 자주 나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는 말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억제(抑制)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 말들은 사람들이 참된 예배를 공허한 의식으로 바꾸었다고 비난하는 뜻이 되고 있다.

밟다”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사람들이 불손한 태도로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사야의 말은 오늘날 신자들이 어떤 마음의 자세와 동기로 교회에 나오며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지에 대해 도전이 되고 있다.

     여호와는 백성들의 예배에 대해 계속 책망하신다.

그는 백성들에게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하신다.

제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일반적인 제물에 대한 언급일 수 있지만, 좀더 구체적으로는, 레위기 2장에서 묘사되고 있는 ‘소제의 예물’을 가리킨다.

곡물로 드리는 제물인 소제의 예물은 좋은 농작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자발적인 선물이다.

둘 중 어느 경우에도, 예배자가 성의가 없거나 혹은 제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려고 한다면, 그것은 “헛된 제물”이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또한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라고 하셨는데, 성막 혹은 성전 안에 있는 “분향[단]”은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 앞에 놓여 있었다 (출 30: 6; 왕상 6: 20-22 참조).

분향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와 관련되어 왔다 (시 141: 2; 계 5: 8).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기도가 가식적이거나 “중언부언”하는 것이면, 그것은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이 되었다 (마 6: 7).

     “월삭과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감사하며 축하하는 기회였다.

명칭(名稱)에서 알 수 있듯이, “월삭”은 월례 축하 행사로, 특별한 제물을 드리고 나팔을 불어 축하하였다 (민 10: 10; 28: 11 -15; 시 81: 3).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주간(週間) 축제가 되고 있다 (출 20: 8 -11).

예배자들은 일상적인 일을 쉬고 하나님 앞에서 성회로 모였다 (레 23: 2-3).

대회”(大會)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모일 수 있었다.

종종 그것들은 백성과 지도자들이 위기를 맞아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모임이 되기도 하였다 (대하 20: 3 -5; 요엘 2: 15 -17 참조).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그같이 특별한 경우로 지키며 모일 때 조차도 “악을 행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하셨다.

     1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한다]”고 하셨는데, “정한 절기”라는 말은 연례축제인 유월절과 이어서 계속되는 무교절,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신 16: 16-17).

그때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인 성소에서 여호와를 뵈었다.

백성들은 일년에 한번씩 그곳에 모여 여호와께서 그들의 삶 속에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축하하였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그 같은 일을 형식적으로 하였으므로,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고 하셨다.

 

이사야 1장 15절

  •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손을 펼 때에”라는 말은 ‘간구’ 혹은 ‘탄원’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자세는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것을 원하거나 필요할 때 사용되었다.

이사야의 청중들은 그들이 그렇게 많은 예물들과 희생제물들을 성전으로 가져온 것을 고려할 때, 자신들이 구하는 것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내 눈을 너에게서 가리고”라고 말씀 하셨을 때, 그들은 크게 놀랐음에 틀림없다.  

어떤 사람을 바라본다는 말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다.

히브리어 사상에서, 어떤 사람 앞에서 선한 은총을 받는 것을 얼굴을 바라보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민수기 6장 24절부터 26절에서,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실 때 그의 얼굴을 그들에게로 향하시고 비추시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평강을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이사야 1장에서,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백성들로부터 돌리시겠다고 한다.

그들이 바친 제물들은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의도한 것과는 정 반대의 효과를 나타냈다.

실제로, 백성들은 “많이 기도할지라도,” 그들이 바친 무의미한 제물의 경우처럼, 하나님은 듣지 아니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그 같은 거절(拒絶)의 궁극적인 이유는 백성들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다.

 그 말은 피차간(彼此間)에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대한 폭력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 (이사야 1장 16 -17절)  

 

1장 10 -15절에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고발하시는 것을 밝히면서, 그들의 위선(僞善)을 폭로하고 죄의 결과(結果)에 대해 경고하였다.  

이들 두 구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의 죄 많은 상태에 대한 치유법을 제시한다.      

 

이사야 1장 16 -17절

  •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6절은 네 가지의 명령을 한다.

그것들은 “스스로 씻으[라],” “스스로 깨끗하게 하[라],” “악한 행실을 버리[라],” 그리고 “행악을 그치[라]”이다       

이사야의 청중에게 “씻는 것”은 단순히 목욕을 하는 것 이상이 되고 있다.

예배의 맥락에서, 그 말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한 준비로 몸을 씻는 의식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깨끗하게 한다”는 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의식에 불순물이 되고 있는 모든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의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한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깨끗하고 정결해 지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내적(內的)인 정화를 의미하고 있다.

     그 같은 내적인 측면은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라]”고 한 명령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멈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이 행하고 있는 악한 행동을 긍정적인 행동으로 대체해야 한다.

1장 17절은 그같이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행동을 위한 다섯 가지 명령들을 열거하고 있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그리고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한다.

선행을 배우며” 혹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우며” (표준새번역) 라는 첫째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이 “옳은 일”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제기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의 명령들은 실제로 율법의 명령들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출 22: 22 -23; 신 16: 20).

이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행동들은 모두 하나님의 품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를 향한 사랑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사랑은 어떤 방법으로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돌 보도록 동기를 부여해주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돕는 것보다 자기 필요를 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설명해 보십시오.

    

요구되고 있는 회개(悔改) (이사야 1장 18 -20절)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여호와께서는 반역하며 불순종하는 그의 백성을 법정(法庭)에다 세우셨다.

그들의 죄(罪)에 대한 증거(證據)는 분명하고도 확실하였다 (사 1: 10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처벌받지 않고 용서받을 수 있는 해결방법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기꺼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백하기를 원하느냐의 여부(與否)가 되고 있다.   

 

이사야 1장 18 -19절: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는 말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초대의 하나가 되고 있다 (사 55: 1 -3; 마 11: 28 -30; 계 22: 17 참조).

이사야 선지자가 당시에 하나님의 자비로운 본성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또한 사도 베드로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되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서신에서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다 (벧후 3: 9).

     “변론하자”라는 말에는 상황을 바로 잡고 논쟁을 끝내자 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소돔과 고모라에게 닥친 운명을 피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들은 회개 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포함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시한 두 가지 주요 문제는 그들에게 순종 심이 없는 것과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가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 대해 계속 무지한 상태로 남아있게 하는 대신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소통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초청하신 것이다.

     공허(空虛)한 제물은 받지 않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의식과 희생제물을 전적으로 거절하신 것은 아니다.

그 같은 사실은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고 하신 말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변화에는 희생 제와 피 흘림이 포함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속죄의 피가 주홍 같은 죄를 순결을 나타내는 흰색으로 바꿀 것이다.

그것은 백성들의 손에 가득한 피가 하나님에 의해 깨끗이 씻김을 받는 다는 뜻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즐겨 순종하면”이라는 말씀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셨다.

  

성경은 우리 삶을 위해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을 제공하고 있다.

 

이사야 1장 20절:

  •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열려있는 유일한 다른 선택은 계속 불순종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그것은 죽음의 길이 되었다.

성경은 우리 삶을 위해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을 제공하고 있다.

첫 번째의 선택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선택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로, 거절하며 배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응답하는 면에 있어서, 이스라엘, 유다 혹은 우리에게는 중간 지점이 없다 (신 30:19 참조).

선지자 이사야의 청중에게 있어서, 죽음의 형벌은 “”로 올 것이다. 

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을 예언하였다.

이스라엘 북 왕국과 유다 남 왕국은 침략 국가들에 의해 멸망 당하였다.

북 왕국은 앗수르에게 멸망 당했고 했고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였다.

두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징벌하셨을 때, 이들 두 이방나라들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칼이 되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단원을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는 말로 마쳤다.

그 말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이 하나님의 권위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변론을 마치는 말이 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더 이상의 변론이 필요 없었다.

오직 남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듣고 순종하거나 반역과 거역을 계속하는 것이 되고 있다.     

선택은 그들의 것이었고 우리의 것이 되고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종교적인 의식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부족하다.                   
  •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삶 속에서 의(義)와 공의(公義)를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죄를 용서해 주신다.     

 

하나님께 당신의 마음을 살펴보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방해가 되는 어떤 죄가 당신의 삶 속에 있으면 밝혀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에 대한 반응으로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신자들이 일상 생활을 할 때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지를 반원들과 함께 토론하십시오.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공부

우리는 8월 30일 주일까지 잠언서와 아가서 공부를 마치고,
9월 6일 주일부터 11월 29일 주일까지 3개월 동안에 걸쳐
이사야서를 공부하게 됩니다.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유일한 구약의 책이 되고 있다 (7: 14).
고난의 종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다 (52: 13- 53: 12).
이사야서를 학습하게 되면, 이사야서가 구원의 교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예배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방법이 됨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