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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약속하신다 - 제 3과 - 2020년 9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7장 7-17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09-14 (월) 11:20 조회 : 33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9월 13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제 3과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학습구절: 이사야 7장 7절부터 17절까지   

 

성경진리:

하나님은 주권자(主權者)가 되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은 그의 약속을 믿을 수 있다.                      

 

주요교리성자 하나님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마 1: 18 -23).  

 

암송구절: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Therefore the Lord himself will give you a sign:

 The virgin will conceive and give birth to a son,

 and will call him Immanuel.”       

 

 

시작하는 글:  

 

“선물로 받은 말의 입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말의 이빨을 살펴보면 그 말의 나이와 상태와 기질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물로 받은 말의 이빨을 살펴보는 것은 감사를 표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속담의 뜻은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선물을 주면 감사하게 받으라는 것이다.

이사야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의 보호를 약속하는 표시로 선물을 주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하스는 하나님 대신에 앗수르를 신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면서 그 선물을 거절하였다 (7: 12).

그것은 황폐한 결과로 이어지는 결정이 되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것보다 그들  자신이  잘할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이사야 7장 1절부터 12장 6절까지

 

본문 배경이 되고 있는 7장부터 12장까지 다섯 장을 하나로 묶고 있는 주제(主題)는 인간이나 국가의 힘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기원전 740 년에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을 당시에, 앗수르 제국이 정치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었다.  

아람 (시리아), 북 왕국인 이스라엘, 및 남 왕국인 유다 같은 작은 나라들은 앗수르의 속국이 되거나 아니면 제국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때때로 작은 나라들은 저항적인 동맹을 형성함으로 제국의 힘과 의지를 시험하였다.

아람과 북 왕국인 이스라엘은 주전 735년경에 그 같은 동맹을 맺고 남 왕국인 유다까지도 그 동맹에 가입시키려고 하였다.

유다 왕이 거절하자, 아람과 이스라엘은 유다가 동맹에 가담하거나 아니면 군사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유다를 위협하였다.

아하스는 자신이 승리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사야 7장 1절부터 25절까지는 여호와의 약속보다 인간의 계획을 신뢰하는 문제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에게 극적인 대결을 벌리는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주 여호와께서는 아하스에게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을 두려워할 것이 없는 “징조”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다 (7: 11).   

그러나, 아하스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고 표징을 구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7: 12).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은 아하스를 책망하고 이사야를 통해 유다에게 미칠 가장 큰 심판의 위험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임마누엘, 즉 메시야 예수가 장차 탄생하게 될 것을 예표하는 중대한 징조를 선포하는 일이 되고 있다 (7: 14; 비교 마 1: 20-23).

이사야는 유다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겪게 될 재난에 대해 계속 설명하였다.

앗수르의 군대는 약속의 땅을 침공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은 황폐해질 것이다 (사 7: 17 -25).

     8장 1절부터 10절까지에서 이사야는 반역하는 동맹국들에게 임할 몰락에대해 계속 예언하였다.

선지자와 그의 아내는 아들을 낳았다.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하나님이 지어주신 그 아들의 이름은 앗수르의 손에 당할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임박한 멸망을 나타내었다.

8 장 11절부터 17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동맹국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을 두려워하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일을 언명하였다.

그런 다음,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헛된 것을 바라고 “신접자와 마술사”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께 구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8: 18 -22).

     9장 1절부터 7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장차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자에 대한 주제(主題)로 돌아 왔다.

선지자는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평강의 왕”으로 불려질 남자 아이가 탄생할 것을 미리 보았다 (9: 6).

이 남자 아이, 즉 메시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정의와 공의”의 영원한 왕국을 세울 것이다.

    다음으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취하실 일들을 설명하였는데, 그의 백성들은 그 같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깊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9: 8 -10: 4).

그들의 땅은 침략군에 의해 정복을 당함으로 영토가 축소될 것이고, 자원들도 빼앗기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남을 이용하려고 하며 자신의 필요와 욕구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불의와 사악과 억압이 땅을 지배 할 것이다.

    그 후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10: 5 -34).

여호와 하나님은 앗수르 제국을 불순종하는 백성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앗수르는 그 오만함과 사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날에, 하나님의 백성의 남은 자들은 앗수르의 정복과 지배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돌아 올 것이다 (10: 20 -23).

     11장에서, 이사야는 장차 출현하게 될 구원자와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에 관한 또 다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 예언의 메시지는 메시야인신 예수님의 오심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영원한 의의 왕국에 대해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이 성취되는 일이 되고 있다.

12 장은 여호와의 구속 받은 백성들이 구원의 날에 노래 할 찬양과 감사의 노래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약속을 지키신 것에 대해 그를 높일 것이다.  

 

 

학습구절 연구

 

하나님은 개입하신다 (이사야 7장 7 -9절)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이사야는 아람 (시리아)과 에브라임 (이스라엘 북왕국)이 동맹을 맺어 침공할 것을 두려워하는 유다 왕 아하스를 만났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에게 여호와를 믿는 믿음으로 굳게 서도록 격려하였다.

 

이사야 7장 7 -9절


●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이 말씀은 이전 구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다 백성들과 아하스 왕은 북쪽으로부터의 침략이 임박한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은 아하스가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사실을 두 번씩이나 말씀하셨다.

아하스와 유다의 어려움은 그것을 믿는 것이었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군사들이 그들의 문 앞에 모여들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믿는 것은, 심지어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들에게까지도, 언제나 도전적인 일이 되고 있다.

8절과 9절은 두 가지 주요요소(主要要素)를 담고 있다.  

     첫째는 유다의 적들이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다메섹”은 “아람” 왕국의 수도였고, “르신”은 아람의 왕이었다.

에브라임”은, 물론 이스라엘 지파 중 하나였지만, 이사야 선지자 당시에는 북 왕국과 동의어(同義語)가 되었다.

이 구절에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북 왕국 전체를 가리키고 있다.

사마리아”는 그 당시에 북 왕국의 수도였다.

     둘째로, 하나님은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일은 예언을 하신지 “육십오 년 내에”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건은 기원전 722 년에 사마리아 성과 북 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점령을 당하고 파괴를 당했을 때 일어났다.

남은 모든 것은 소수의 생존자들과 앗수르인들이 제국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이주시켜 재정착시킨 새로운 인종 그룹들로 채워진 황폐화된 영토뿐이었다.

이들 다른 종족그룹들은 서로 결혼을 하여, 궁극적으로 예수님 당시에 사마리아인들로 알려진 인종집단이 생겨나게 되었다. 

북 왕국이 멸망될 것이라는 사실은 아람(시리아)도 사라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사야는 이 시점에서 단순히 하나님의 특정한 백성에게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이사야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그 자신과 백성이 여호와를 “굳게 믿지 아니하면” 유다도 아람 (시리아)과 이스라엘 처럼 한 나라로 “굳게 서지 못하리라”고 경고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으면, 그들의 대적들과 같은 운명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는 뜻의 말이 되고 있다.

불행히도, 아합은 이 경고에 주의(注意)를 기울이지 않았고, 자신의 미래(未來)를 확보하기 위해 정치적 책동을 하고 있었다.

침략의 위협과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해주실 것을 믿지 않았다. .

 

당신은 언제 믿음으로 굳게 서야 했습니까?

그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모든 의심이 제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충실하고 믿음에 따라 행동하도록 도와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믿음의 응답을 기대하신다 (이사야 7장 10 -13절)  

 

이사야 7장 10 -11절


●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해결책(解決策)을 신뢰하는 경향을 알고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에게 그가 약속해주신 일이 이루어질 것을 입증하는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다.

놀라운 것은, 그 징조는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 말의 핵심(核心)은 징조의 한계가 되고 있다.

아하스는 태양이 머물게 해 달라고(수 10: 12) 혹은 어두워 지게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다.

징조 없이 믿는 것이 더 좋은 일이지만 (요 20: 29), 하나님께서 구하라고 하시면, 그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였고 그 징조를 받았다면, 왕은 믿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하스는 이것을 알고 있었고, 그의 반응은 교활할 정도로 영리하였다.

 

이사야 7장 12 -13절 


●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것은 언뜻 들으면 좋은 대답처럼 들린다.

많은 경우에, 그러한 대응은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 7 장의 경우에는, 아하스의 대답은 그가 이미 마음에 결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였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행하려고 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해결책(解決策)을 찾으려고 하였다.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종종 실제적(實際的)인 동기(動機)나 생각을 감추기 위하여 종교적인 용어(用語)를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다.

예(例)를 들어, 우리가 "그것에 대해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은 “기도해 보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은 어떤 일에 전념(專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감추기 위한 방편(方便)이 될 수 있다.

아하스 왕은 여기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믿음으로 행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징조”를 구하면 변명할 구실이 없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였다.

그는 의롭게 들리는 용어로 자신의 죄를 가리려고 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 왕을 꿰뚫어 보았다.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 지어다”는 엄한 말로, 이사야는 아하스의 변명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다윗의 집”이라는 비인격적인 표현은 아하스가 왕으로 계속 서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 때문인 것을 경고하는 역할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하신 대로 “다윗의 집”에 신실하게 행하셨지만, 다윗의 집의 왕들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백성들을 다스리지 않았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는 말은 아하스 왕이 불의로 백성을 괴롭게 하고도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 되고 있다.

이사야와 하나님은 아하스가 경건한 변명으로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경건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은 하나님께 어떤 표징을 구한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표징을 받았습니까?

우리의 믿음과 관련하여 표징에 대한 욕구가 언제 좋거나 나쁩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이사야 7장 14 -15절)

 

이사야 7장 14절:


●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주께서 친히”라는 말은 강조형 표현방법이 되고 있다.

아하스 왕은 “징조”를 구하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징조를 보여주시기로 하셨다.  

아하스는 그가 바라던 변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불성실(不誠實)이 열매를 맺어 무르익으면, 아하스는 하나님을 탓할 수 없게 되었다.

     “처녀가 잉태하여”라는 말은 성경해석자들 사이에 논란의 원천(源泉)이 되어오고 있다.

본문의 히브리어 단어와 관련하여 몇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히브리어로 “알마”(almah)라는 용어는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이 단어는 "동정녀"를 의미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새로 결혼한 여자나 어떤 경우에는 젊은 여자를 지칭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개념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창 24: 43; 출2: 8; 시 68: 25; 잠 30: 19; 아가 1: 3; 6: 8 참조).

물론, 신약성경 기자들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마리아와 예수님의 탄생에 적용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본래의 문맥으로 이사야 7 장 14 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 말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마리아, 예수님, 그리고 동정녀 탄생을 언급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구절은 하나 이상의 성취를 가질 수 있는가?

     주석자들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접근법을 써서 이 징조를 해석해 오고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알마”(almah)라는 말로 약속된 그 징조는 단지 아하스와 그 시대에만 국한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의 방법은 그 예언은 오직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의 사건에서만 성취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을 9장 6절과 7절에서 묘사되고 있는 미래에 나타날 이상적인 왕과 관련시키고 있다.

세 번째의 방법은 그 약속을 이중적 성취의 성격으로 보는 것이다.

그 예언은 선포된 지 일 년 내에 1차적으로 아하스에게 징조로 성취되기는 하였지만, 그 예언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사건에서 완전하게 성취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신약 성경기자들은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그 약속의 말씀을 예수님의 탄생사건에다 적용시켰던 것이다.

     이사야 7 장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 실제로 이 징조가 예수님에게 적용되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서 이사야 7장 14절을 인용했을 때 (마 1: 23), 그는 단지 징조만을 언급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사야의 주변환경과 아하스의 상황을 지적하고 있었다.

이사야의 때와 마태의 때라는 역사의 두 시점(時點)에서, 유다 백성들은 외국 세력의 위협과 억압에 직면해 있었다.

두 때 모두, 백성들은 그 같은 상황에 직면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데 대해 확신이 없었다.

두 때 모두, 지도자들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자신의 힘과 계획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은 그가 참으로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며, 상황을 지배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징조를 주셨다.

두 경우 모두, 아이는 “임마누엘”이라는 명예스러운 호칭(呼稱)을 받을 것인데,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가 되고 있다.

물론, 마태 복음에 나오는 아이인 예수님은 참으로 유일무이한 방법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되신다.

그는 이사야 9장 6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예언된 아기가 되고 있다.

두 경우에 있어서,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그를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방법과 힘을 의존할 것인가?

 

이사야 7장 15절:


●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이 구절을 통해 이사야는 아이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중요성이 몇 년 안에 분명해질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라는 말은 ‘bar mitzvah’로 불리는 성인식을 가리켰을 수 있다.

히브리 사내아이들은 열두 혹은 열세 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고 성인이 되었는데, 그때가 되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졌다.   

그때 그 아기의 음식은 버터와 꿀이 될 것이다.

버터와 꿀은 사막 유목민들의 기본적인 식량이었다.

어떤 주석가들은 그 땅이 극도로 황폐해짐에 따라 남는 음식물이라곤 버터와 꿀밖에 없게 될 것을 뜻하는 말로 생각하기도 한다.

7장 22절은 버터와 꿀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벌 후에 먹을 양식이 될 것으로 밝히고 있다.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이사야 7장 16 -17절)

 

이사야 7장 16 -17절:


●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라    


이사야는 기본적으로 7장 15절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예언된 아이가 성년이 될 때를 묘사하고 있다.

15 절에서, 선지자의 강조점은 아이가 성년이 되었을 때의 음식이 어떠할지에 관한 것이었다.

16절에서, 선지자의 강조점은 유다가 아람-이스라엘 동맹으로부터 직면하고 있는 실제적인 위협의 때가 되고 있다.

예언된 아이가 성년이 되기 전에, 즉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유다를 위협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사실로 입증되었다.

주전 722년에, 앗수르 군대는 수도 사마리아를 파괴하였고, 온 나라를 점령하였으며, 이스라엘 왕을 체포하였고, 살아남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7장 17절은 남 왕국인 유대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되고 있다.

남 왕국인 유다는 보호를 받기 위해 앗수르와 동맹을 맺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앗수르를 유다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계획이었다.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다가오는 심판의 철저함을 강조하고 있다.

아하스의 불신과 어리석은 결정은 모든 유다 백성에게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라는 말은 기원전 930년경 솔로몬이 죽은 후 통일 이스라엘이 두 왕국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으로 나뉘어 진 것을 가리키고 있다 (왕상 12: 12 -17 참조).   

아하스 왕이 여호와를 신뢰하기를 거부하고 인간의 힘과 계획을 신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인해, 유다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거의 200 년 동안 일찍이 “당하여 보지 못한” 정도의 재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단원은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심으로, 그의 백성들은 그의 약속들을 신뢰할 수 있다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한 약속에는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불순종할 경우에는 징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언도 포함되고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계획들은 그의 백성들에게 희망의 원천이 된다.                                

  •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믿음의 응답을 하기를 기대하신다.           

  • 하나님은 궁극적인 증거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그의 약속들을 신실하게 지키신다.   

  •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신다.   

당신의 삶의 어떤 영역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그를 더 깊은 신뢰하도록 요구하십니까?
당신이 경험할 수 있는 망설임의 원인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공부

우리는 11월 말까지 이사야서를 공부합니다.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유일한 구약의 책이자 (7: 14)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종임을 예언한 책이 되고 있습니다 (52: 13- 53: 12).
이사야서를 학습하게 되면, 이사야서가 구원의 교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예배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방법이 됨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