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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보호하신다 - 제 6과 - 2020년 10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31장 1-9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10-05 (월) 09:58 조회 : 21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10월 11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제 6과  

 

 

하나님은 보호하신다                

 

 

학습구절: 이사야 31장 1절부터 9절까지   

 

성경진리: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실 수 있다.

 

주요교리성부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아버지처럼 대하신다 (히 12: 9).

 

 

암송구절:  이사야 30장 18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느니라   

 

“Yet the LORD longs to be gracious to you;

 therefore he will rise up to show you compassion.

 For the LORD is a God of justice.

 Blessed are all who wait for him!”

 

 

시작하는 글:  

 

금은 불로 정제시키고 정화한다.

불로 광석을 녹이는 것은 금을 원석에 포함된 다른 물질들로부터 분리해내는 하나의 방법이자 과정이다.

그 과정은 또한 금의 순도를 시험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우리의 믿음도 정제되고, 정화되며, 강하게 되려면, 불로 비유되고 있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과정은 시련, 고통, 시험 등 온갖 종류의 형태와 모양을 지닐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의 위협(威脅)은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주는 믿음의 시험이 되었다.

 

어떻게 위기(危機) 사람의 본성과 신념을 드러내주는가?

위기를 당하면  사람 안에 있는 장점과 단점이 드러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배경설명

 

이사야 28장 1절부터 33장 24절까지

 

     28장부터 33장까지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로 두 왕국으로 나뉘어져 있던, 북 왕국인 이스라엘과 남 왕국인 유대 대해 일련의 “화 있을진저”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28 장 1절부터, 이사야는 “에브라임”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고 있는데, 에브라임은 북 왕국인 이스라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이 말씀이 전해진 연대는 앗수르가 북 왕국과 그 수도인 사마리아를 파괴시킨 해인 기원전 722년 이전일 수 있다 (왕하 17: 1 -6).

이사야가 이 심판의 말씀을 선포 할 때 북 왕국은 여전히 온전한 상태였지만, 왕국은 영적으로 빠르게 쇠퇴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었다.

백성들의 영적 수준은 매우 유치하였고, 피상적이었다 (28: 7 -13).

     28장 14절부터, 이사야는 그가 전하는 심판의 말씀에 남 왕국의 지도자들도 포함 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계략과 힘을 믿고 스스로를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28: 14 -22).

그들은 “사망과 언약”하였으므로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자기들에게 미치지 못하리라고 믿었다 (28: 15).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실 때]” “정의”와 “공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그의 선지자를 통해 선언하셨다 (28: 17).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이 그의 백성을 구할 수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부의 상황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28: 23-29).

농번기에 농부들이 농사짓는 방법과 순서에 따라 농사를 지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방법에 따라 살아가야 마땅하였다.

     이사야는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29: 1 -4).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을 징벌할 열방을 데려오실 것이며 백성들은 이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29: 5 -8).

이사야는 “지음을 받는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며 백성들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영적 무감각을 질책하였다 (29: 9 -16).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는 것과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들이 하나님께 숨겨졌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이사야가 29장 17절부터 24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장차 일어날 일들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인정하며 그를 경외하게 될 미래의 때가 되고 있다.

     그런 다음, 이사야는 유다 백성을 “패역한 자식들”로 부르면서 그들이 앗수르의 위협에서 구출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애굽을 믿고 그들과 “맹약”을 맺고 있는 것을 “화 있을진저”라는 말로 화를 선언하였다 (30: 1 -17).    

애굽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수치스러운 일과 고통스러운 심판의 결과가 될 것이다.

동시에,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들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풀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30: 18 -26).

하나님은 앗수르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그의 백성을 구출해 주실 것이다 (30: 27 -33).

    다시 이사야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하면서 유다가 하나님의 힘보다는 애굽의 힘을 신뢰하기로 한 것에 대해 백성들을 질책하였다 (31: 1 -5).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한다]”고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우상들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31: 6 -9).

반면에, 그는 하나님이 의로운 왕을 보내서 그의 백성을 공의로 놀라운 날이 올 것을 예언하였다 (32: 1 -8).

이사야 선지자는 또한 백성들 중에 무사 안일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도전하였다 (32: 9 -20).

그는 백성들에게 애도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가 위로부터 부어주실 하나님의 영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32: 15).

     이 단원은 심판 후에는 하나님의 구속과 회복이 있을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로 끝나고 있다 (33: 1 -24).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회복과 변화가 심판 혹은 징계의 주요 목적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징계의 목표로 삼으시기 때문이다.  

 

 

학습구절 연구

 

헛된 희망 (이사야 31장 1 -3절)  

 

이사야 30장 1절부터 5절까지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앗수르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애굽과 동맹을 맺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31장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이 경고를 되풀이 하면서, 애굽의 군사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백성을 위한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사야 31장 1절


●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이 구절은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을 “화 있을진저”라는 말로 심판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問題)는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외국 세력을 의존하는 것이 되고 있다.

7장에서, 아하스 왕은 앗수르의 힘을 믿고 다메섹 (아람)과 북 왕국인 이스라엘의 위협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려고 하였다.

이제 유다는 앗수르를 신뢰했던 어리석음에서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출애굽 사건으로 인해, 애굽을 신뢰하는 것은 전에 앗수르를 신뢰했던 것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 나쁜 일이 되었다.

     특별히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유다는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는 유혹을 받았는데, 그것들은 애굽의 “마병”들과 “병거”들이 되고 있다.

애굽 군대는 당시 첨단 무기를 가진 강력한 군대였다.  

말들과 병거들은 전쟁의 승패(勝敗)를 가르는 큰 요인이 되었다.

반면에, 유다는 기병이나 병거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다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그들이 볼 수 있는 힘을 신뢰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이 선택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명령(命令)을 정면(正面)으로 역행(逆行)하는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명기 17장 14절부터 20절까지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왕을 세우게 되면, 왕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사야가 31장 1절에서 금해야 할 것으로 열거하고 있는 구성 요소들이 되고 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일이 특별히 금지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동맹보다도, 애굽과의 동맹은 특별히 금지되었다.

대신에, 왕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는데 집중해야 하였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은 죄에서 해방 된 후 죄의 속박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의 왕이, 이 경우에는 유다의 왕이,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고 그 율법의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하도록 명령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를 앙모[하여야]” 하였다.     

분명히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안전을 제공하실 수 있고 또 그같이 해 주실 것으로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이 원하는 안전을 진정으로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이다.

 

이사야 31장 2 -3절


●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이란 말은, 특별히 “께서도”라는 말은, 약간의 냉소적인 뜻이 담긴 말일 수 있다.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인데 반해, 유다 백성들은 애굽에 도움을 구하는 것을 매우 지혜롭게 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이사야가, “너희가 그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도 지혜스러우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19장 11절부터 15절에서, 이사야는 애굽을 신뢰하는 것은 실제로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 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애굽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는 어떤 시도도 헛된 일이 되고 있는 것은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며 그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수]”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그릇되거나 틀린 일을 행하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자연 재해라든가 악한 나라들로 부르는 것들을 사용하여 그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다.

잠언은 하나님께서 그같이 행하시는 것을,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잠 16: 4).

어떤 악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피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이미 하신 말씀은 취소하지(“변하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의 성품이 일관되고 공의로 활동하신다.

그렇지만, 그 말은 백성들이 회개 할 때 하나님께서 자비로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실제로 그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시다 (출 34: 6).

     애굽을 신뢰하는 그의 백성들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실 것]”이다 

문맥에 비추어볼 때, 여기서 “악행하는 자들의 집”은 유다가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을 신뢰하는 백성들의 배신은 그들을 하나님을 전적으로 대적하는 범주에 속하게 했던 것이다.

악행을 돕는 자들”은 유다에게 거짓 희망을 준 애굽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3절에서, 이사야는 애굽인들이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유다 백성들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죽을 존재인 인간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애굽인들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 할 것이다.

위협을 받으면, 그들은 자신의 동족을 구하기 위해 동맹국을 버릴 것이다.

애굽 군대를 유다에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든 말들조차도 “육체요 영이 아니[었다].

그 같은 표현들은 그들 모두가 제아무리 강할지라도 유한하고 제한적인 존재가 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 되고 있다.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영적 존재이시며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영원한 분이시다.      

유다인들은 애굽 군대를 선택하는 나쁜 결정을 하였던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먼저 하나님께로 향하여 그를 의지하고 그 사정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다른 모든 것을 먼저 시도한 다음 하나님께로 향하려는 유혹을 자주 받습니까?

하나님께서 과거에 신실하게 행해주신 것을 기억하는 것이 그 같은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 (이사야 31: 4 -5절)

 

31장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가 애굽의 도움을 구하려 하는 것을 거짓 희망으로 정죄하였다.

본 학습구절인 31장 4절과 5절에서, 이사야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앗수르를 대항하여 싸울 때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되심을 선언하고 있다.

 

이사야 31장 4 -5절:


●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
●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앞의 세 구절에서 묘사된 유다의 믿음 없는 행동은 이제 본 학습구절에서 사용되고 있는 두 가지 예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함과 대조(對照)되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징계하시며 심판하실 때, 버리고 떠나지 않으신다.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그의 백성에게 회개와 회복의 기회를 주는 것이 목적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도 또한 같은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다.

     4절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리는]” 사자로 묘사되고 있다.

사자는 소리를 치며 큰 소리로 위협하는 목자들에게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核心的)인 개념(槪念)은 사자는 “만군의 여호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어떤 사람이나 군대도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호칭은 모든 인간의 세력이, 깨닫고 있든 그렇지 않고 있든 간에,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는 강림하셔서 “시온 산”과 “그 언덕에 서서” 모든 도전자들을 맞아 싸우실 것이다.

심판을 내리시는 것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남은 자들을 그들을 파괴하려는 자들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

시온 산이 있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의 지점으로 취급될 것이다.

이는 그곳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특별한 방법으로 만나시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5절에서, 이사야는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하는 것]”에다 비겼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같은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고 한다.

이사야는 또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것을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혹은 예루살렘으로 상징되고 있는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때, 그들을 불에서 건져내시는 것보다는 먼저 불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도록 “호위하여” 지켜 주실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그것을 “뛰어넘어”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뛰어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출애굽기서 12장 27절에 나오는 단어와 같은 것이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은 “멸하는 자”가 양의 피가 발린 이스라엘의 집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주셨다 (출 12: 23).

이사야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비유도 똑 같은 뜻이 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새도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약탈자가 등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중간에서 막고 있는 것이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할 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계속 신실하시다.

사도 바울은 딤후 2장 13절에서 그의 믿음의 아들이자 사역 동역

자이던 디모데에게 그 같은 점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그 분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 분은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표준 새 버녁).

 

당신은 언제 당신의 삶 속에서 당신을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은 손길을 보셨습니까?

그 사건은 당신의 믿음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회개의 증거들 (이사야 31장 6 -9절)

 

31장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애굽을 신뢰하는 것은 헛된 희망이라고 주장하였다.

31장 4절과 5 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끝없는 신실함을 상기 시켜주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신실치 못한 것을 회개하는 것이 되고 있다.

 

이사야 31장 6 -7절:


●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릴 것이며     


이사야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속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하시니,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고 촉구한다.

그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는 약속은 임박한 심판보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더 큰 동기(動機)가 되고 있다.  

     “심히 거역하던”이라는 말에서는 행동의 강한 의도적(意圖的)인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애굽을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척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애굽의 도움을 구한 것은 의식적(意識的)인 선택의 일이 되었다.

그 같은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린 일은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인 행위로 생각될 수 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들에게 “너희가 그토록 거역하던 그분께로 돌이켜라”고 한다 (표준 새 번역).

 

우상 숭배의 핵심(核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분을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노력이다.

 

     이제 그들이 범죄함으로 만든 은과 금의 우상들을 “던져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 올 날이 올 것이다.

또한 그들은 금이나 은 같은 우상의 귀금속이 하나님의 귀중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사야가 우상들을 던져버린다고 했을 때 그 말은 우상 자체 이상의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상 숭배의 핵심(核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분을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노력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받은 유혹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욕망이 되고 있다 (창 3: 5).

마찬가지로, 우상을 만들어서 숭배하는 것은 신을 어느 정도 통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운명과 안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과 환상에 사로 잡히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 앞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과 환상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려는 삶을 추구하는 죄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로 그 정체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이야 말로 세상의 다른 어떤 것들보다 가장 귀중하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사야 31장 8 -9절:


●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8절의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니”라는 말은 이사야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었던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말이 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사야는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라는 말로 그 뜻을 더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밝혀주고 있다.

고대 세계에서, 하나님은 종종 다른 나라를 통해 한 나라를 심판하셨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심판하시기 위해 동맹국들을 일으키셨고, 후에는 다른 동맹국들을 일으켜 바벨론을 심판하셨다 (사 10: 24 -26; 13: 4 -5; 19 -20 참조).

     이사야 선지자는 여기서 앗수르가 칼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은 “사람의 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한다.

그 같은 하나님의 계획은 이사야서에서 여러 번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14: 24 -27; 29: 5 -8; 30: 27 -33 참조).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이 앗수르를 치셔서 앗수르가 참패를 당한 일은, 주전 701년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유다의 히스기야 왕을 쳐 들어왔을 때 일어난 일이 되고 있다 (사 37: 36 -37 참조).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인 앗수르의 왕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펴신 멸망의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다.

더욱이,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9절에서, 이사야는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고 한다.  

그의 반석”이라는 말은 앗수르의 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앗수르는 하나님이 그 나라를 심판 하실 때 제국에 대한 지배력을 잃게 될 것이다.

성경은 종종 움직이지 않는 절벽이나 암반(巖盤)을 가리키는 뜻으로 “반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그들의 “반석”으로 불렀다 (삼하 22: 2 -3; 시 19: 14; 사 44: 8).

반석처럼 여기던 앗수르의 왕에 대한 확신감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볼 때, 앗수르는, 이사야가 이전에 지적한 대로 (10: 5 -11), 앗수르는 단순히 하나님의 손안에 들려있는 심판의 도구(道具)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사야는 “[앗수르의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고 한다.

기치” 혹은 “부대기”(표준 새 번역)이라는 용어(用語)는 문맥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 선지자는 11장 10절에서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그 말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말에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전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있음이 강조되고 있다.

     이사야는 31장 9절의 끝맺는 말에서 하나님에 관하여 두 가지 흥미로운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첫째로, 이사야는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다]”고 한다.

성경해석자들은 “불”이라는 비유적 표현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같을 경우, 사악한 왕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궁극적으로 시온, 즉 그의 임재의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올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풀무(화덕)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고 한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그에게로 돌아온 자들을 단련시키시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잠언은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고 한다 (잠 27: 21).

하나님은 여러 가지 상황과 여건 및 방법으로 그의 백성을 훈련하시며 단련시키신다.        

     믿는 자들이 삶의 다양한 시련과 역경에 직면 할 때, 종종 하나님의 능력보다 인간의 해결책(解決策)을 신뢰하는 것이 합리적(合理的)인 것같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시도들이 헛된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신실하지 않을 때에도 계속 우리에게 신실하시며, 인간의 힘을 월등히 능가하는 능력을 갖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진정으로 신실하게 행하실 것을 믿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다른 해결책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렸을 때,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능력보다 인간의 힘을 신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실패로 끝나게 된다.
●     하나님은 우리가 신실하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신실하시다.              
●     하나님을 신뢰하면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된다.      

 안전을 위해 당신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신뢰하는 것들이 있으면 그것들을 당신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밝혀주신 결과로, 당신은 무엇을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당신의 삶 속에서 당신은 하나님께 충성스럽지 못했는데도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주신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의 신실함에 대해 감사 할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누구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공부

우리는 11월 말까지 이사야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유일한 구약의 책이자 (7: 14)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종임을 예언한 책이 되고 있습니다 (52: 13- 53: 12).
이사야서를 학습하게 되면, 이사야서가 구원의 교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예배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방법이 됨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됩니다.